성경의 비유

므나의 비유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2. 12. 4. 15:15

므나의 비유

누가복음 19:11-27

 

성경에는 많은 비유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많은 비유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직설적으로 말씀해 주시지 않고 비유로 말씀해 주셨냐? 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고 알고 있습니까?

 

여기에 대해 마태복음 13:10-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하시면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들에게는 알려 주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감추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천국비유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나라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고, 천국비유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 비유가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도 없고 감동도 없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천국비유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까? 아니면 그저 무덤덤한 마음으로 천국비유의 말씀을 읽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도 성실한 성도들이 될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 더 큰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과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멀리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인식하며 살아야 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인식이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대해 알려 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되 깨어 있는 성도로 종말 시대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천국비유의 말씀들 중 하나인 므나의 비유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먼저는 이 므나 비유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 므나 비유의 배경

 

12절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므나 비유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어떤 귀인은 왕족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왕족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당시 이 왕족의 나라는, 더 큰고 강한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곧 바로 왕 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자신의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다른 나라로 가서 자신이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임을 승인받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제 예가 역사 속에 많이 있었습니다.

전에 원나라가 세계를 정복하고 호령할 때 고려는 원나라로부터 독립된 나라로 존재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원나라의 속국으로 예속되어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려의 왕이 바뀔 때에는 반드시 상국이 되는 원나라에 가서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므나 비유는 바로 이런 정치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비유입니다.

 

이런 정치적인 상황은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있었습니다.

이 비유의 배경이 되었던 사건은 바로 헤롯 왕가의 왕위 계승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던 실재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삼아 이 비유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유대 땅을 다스리던 헤롯 대왕은 B.C 4년경에 동방에서 온 박사들로부터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민수기 24:17절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발람이 예언한 말씀으로써 장차 위대한 유대인의 왕이 나실 것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은 발람이 살았던 동방 땅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에 나타난 기이한 한 별을 보고 발람의 예언대로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별의 인도함을 받으며 예루살렘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이르자 별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당시 유대인의 왕이었던 헤롯을 찾아가서, 우리는 동방 땅에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음을 알려주는 별을 보고 그 태어나신 왕에게 경배하려고 왔다고 하면서, 그 태어나신 유대인의 왕이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헤롯 대왕이 누구입니까?

이 헤롯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남달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아닌 이두메 사람이면서 지금 유대인의 왕이 되어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헤롯은 정통 다윗 가문의 후손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왕위에 도전하거나, 자신의 왕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죽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들도 죽이고 아내도 죽였던 사람입니다. 이런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말을 용납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당시 헤롯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 헤롯은 내가 반드시 그 아기를 찾아내어 죽이고 말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동방박사들의 말을 들은 헤롯은 서기관들을 조용히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예언에 대해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면 어디서 태어난다.’고 예언되어 있는 지도 물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유대인의 왕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예언되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마태복음 2:6절입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 말씀은 미가서 5:2절에서 예언된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래서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을 불러서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찾거든 나도 그 왕에게 경배할 수 있도록 알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헤롯의 실재 목적은 자신의 정적인 될 수도 있는 그 아기를 찾아 죽이기 위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는데 다시 그 별이 나타났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별의 인도함을 받아 아기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후에 천사의 지시를 받아 올 때와는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헤롯은 그 부하들로부터 동방박사들이 자신 몰래 유대 땅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분노합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별이 나타났다고 하던 그 때를 기준삼아 두 살 이하의 영아들을 다 죽이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립니다. 헤롯은 이렇게 해서라도 왕위를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이 헤롯이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기간 중에 죽었다고 합니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헤롯은 천년만년 왕의 권세를 누리며 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니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천년만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주어진 삶을 긍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멘.

 

헤롯이 죽은 후 그가 써 놓은 유언장을 펼쳐 보니 자신이 죽으면 그 왕국을 세 명의 아들이 나눠 통치하도록 유언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롯 왕국은 헤롯 아켈레오와 헤롯 안디바스, 그리고 헤롯 빌립 세 사람이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이스라엘은 독립 국가였지만 로마에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 아버지 헤롯 대왕이 왕국을 세 아들이 나눠 통치하도록 유언을 하였지만, 그 아들들이 왕이 되려면 그 상국으로 섬기고 있는 로마의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로마가 이들을 왕으로 승인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그 아버지 헤롯의 유언이 있다고 해도 이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 형제는 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을 다스리는 왕위를 승인받기 위하여 로마로 먼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이기 때문에 그 여행은 오랜 시간을 요하는 아주 긴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간다고 곧 바로 왕으로 승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의 법과 절차에 따라 이 헤롯의 아들들이 유대 땅을 다스리는 분봉 왕으로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는지를 논의하고 검증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다 마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헤롯의 세 아들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로마로 떠나면서 그 신복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나눠 맡기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도 그 대표단을 로마로 파송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헤롯 가문은 유대인이 아니며 유대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헤롯의 아들들이 유대 땅을 통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에서의 후손인 헤롯의 아들들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서명을 받아서 이 서명과 함께 대표단을 로마로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서명에 덧붙여서 보냈습니다.

만약 왕이 될 자격이 전혀 없는 헤롯 아켈레오를 유대인의 왕으로 세운다면, 우리는 그 아켈레오의 통치를 거부할 뿐 아니라 그를 왕으로 인정하여 세운 로마의 통치도 거부할 것이라는 말을 확실하게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가 자신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서 헤롯의 아들들을 유대인의 왕으로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로마는 헤롯의 아들들을 유대인을 다스리는 분봉 왕으로 승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분봉 왕으로 승인을 받은 헤롯 아켈라오는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란이나 소란을 일으킬 것을 대비하여서 로마 군대와 그 군대의 지휘관인 빌라도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의 힘을 빌려서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과 사회적인 지위를 박탈하여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을 지지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이 므나 비유배경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이야기를 해 주시려고, 당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이 므나 비유의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까?

 

2. 므나 비유를 통해 주신 말씀

 

예수님이 므나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 해 주고 계신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첫째, 제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당시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그곳에서 메시야 왕국을 선포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점점 가까워져 오자 제자들은 누가 그 도래하는 메시야 왕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심하게 서로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두 번 오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오실 때는 고난 받는 메시야로 오셔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어주시기 위해 오실 것이고, 두 번째 오실 때에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셔서 죄악 된 세상은 심판하시고 성도들은 심판에서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 왕국인 천년 왕국을 이 세상 속에 세우셔서 친히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이 일은 메시야 왕국의 도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지시고 고난 받고 죽으려고 올라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 후 3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왕위를 받아 오시려고 떠나실 것이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왕으로서 이 세상에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이 바라던 메시야 왕국이 이 땅에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은 당장 그 메시야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헤롯의 자녀들이 분봉 왕으로 승인을 받기 위해 로마로 먼 여행을 떠나서 승인을 받고 돌아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듯이,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다시 오시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역사의 시계 바늘은 돌고 돌아서 예수님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시려고 승천하신 후에 2,0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2,000년이 더 지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이 시대는 성경이 종말 시대의 중요한 특징으로 알려주신 네 가지 징조인 미혹, 전쟁, 기근과 지진, 전념 병이 창궐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특히 청황색 말로 상징되고 있는 온역 즉 전염병의 일종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의 소식이 온 세상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시대입니다. 결국 이런 현실이 어디까지 나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심한 미혹과 전쟁, 기근과 지진과 코로나 19보다 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인류의 약 1/4이 사망하는데 까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종말 시대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노아의 시대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세상을 보시고 하나님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이 이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로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왜 교회가 반대하고 양식 있는 사람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들에서는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이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인권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악한 사람들의 인권은 존중하고 선한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는 법으로 제한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동성애를 합법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런 사람들은 이 시대를 악한 시대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지지하는 교회가 되어서도 안 되고 성도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장 하나님 나라가 임할 줄 생각하고 있었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는 먼 훗날 일어날 일이라고 알려주셨지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는 그 날이 임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징조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임을 기억하고 우리는 깨어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또 예수님이 므나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 해 주고 계신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둘째, 예수님의 통치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3-14절입니다.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헤롯의 아들들이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분봉 왕으로 승인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날 때 이들이 왕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헤롯의 아들들은 한 므나씩을 나눠주면서 내가 가서 왕위를 받아 올 때까지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장사를 하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네가 나의 왕 됨을 지지하듯이 그렇게 나의 왕 됨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라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없는 동안에 나의지지 기반을 넓혀 나가서, 나의 영지에서 폭동이나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헤롯왕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헤롯왕의 아들들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대표단을 로마로 보내어서 헤롯의 아들들이 유대인이 왕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헤롯의 아들들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듯이,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통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19장 말씀을 보면 누가는 예수님께서 삭개오 사건 직후에, 삭개오 사건과 연관지어서 이 므나비유의 말씀을 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11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렇게 볼 때 이 므나비유는 삭개오 사건과 연관성이 깊은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삭개오 사건에서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들인 사람은 누구이고, 예수님의 통치를 거부한 사람은 누가라는 것입니까? 삭개오 사건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세리장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고 있었던 삭개오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부류 중에 누가 예수님을 통치를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누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까?

 

당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세리장 삭개오는 하나님의 통치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도 동참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 상식적인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죄인으로 정죄했던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7절입니다. 뭇 사람이 보고 수근 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죄인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비난하고 수근 거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삭개오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가 누구입니까?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 장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로마를 대신해서 여리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어들였던 수장이었습니다.

 

당시 세리장들이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로마가 부과한 세금에다가 또 그만큼의 세금을 더 얹어서 부과했습니다. 그래서 그 얹어서 부과한 세금으로 세리들의 월급도 주고 그 나머지는 자신의 수입으로 챙겼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삭개오는 아주 돈 많은 부자였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세리나 새리 장매국노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동족을 괴롭혀서 돈을 버는 사람, 하나님의 구원에서 떠나 있는 죄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인인 삭개오와 교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돈은 많았지만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복음의 말씀을 전해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변화된 삭개오가 한 고백이 이것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삭개오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9-1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금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사람은, 자기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내 세우며 다른 사람들의 죄를 판단하고 정죄했던 유대인들이 아니고,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정죄 받으며 살아온 삭개오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간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입니까?

오늘날 이 세상 속에 임하여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영적인 나라입니다. 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왕국의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고 통치의 개념으로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교회에 다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큰 교회에 다니고 그 교회 목사님이 얼마나 유명한 분이신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보다가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 지금 내가 고백하고 있는 신앙이 어떤 신앙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지금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고 있느냐?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 고백한 믿음의 결단대로 살아가면 거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개오는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삶을 통해 보여주며 살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이런 삶의 변화를 보여주었던 삭개오를 향해 예수님은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장차 삭개오가 죽게 되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보기에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은 곧 죄악 된 삶이고, 넓은 길을 가는 삶이고, 멸망을 향하여 가는 길입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의로운 삶이고, 좁은 길을 가는 것이고, 구원 곧 영생을 향하여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자신을 그 삶의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큰일을 성취하고,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하고 난 후에도, 전혀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 행한 모든 일들이 그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리고 또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그 생애를 그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에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좁은 길이고, 그것이 비록 고난이 따르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예수님이 므나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 해 주고 계신 이야기 무엇입니까?

셋째, 예수님이 왕으로 재림하시는 그날에는 그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헤롯의 아들들은 로마에 의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되자마자, 곧 로마의 군대를 데리고 와서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였던 사람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27절입니다.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적극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는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면서 한 므나 씩을 주고 떠나면서 장사하라고 하였는데 그 결과에 대한 결산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왕 됨을 인정하고 그 통치를 받으며 살아 온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 살아온 믿음의 삶을 결산해 주는 시간이 될 것이지만, 예수님의 왕 됨은 거역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았던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왕 됨을 인정하고 그 통치를 받으며 산 사람들도 두 부류로 나눠질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부류는 한 므나로 장사하여 남긴 사람들입니다.

16-19절입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둘째 부류는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온 사람입니다.

20-23절입니다.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니라 하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소유와 업적을 남기게 되지만, 하나님의 통치 받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에 보화를 남기게 됩니다. 이런 남김들 중에서 하나님은 어떤 남김을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에 보화를 남기면 사는 사람들을 인정해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남긴 업적과 소유를 인정해 줍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므나의 비유에 대한 오해가 바로 이것입니다.

므나 비유에서 다섯 므나 열 므나를 남기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자꾸 큰 교회 남기고, 무슨 업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서 하늘에 보화를 남기며 사는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노라면 하늘에 보화가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노라면 하늘에 보화를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무엇을 보고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해 주셨습니까?

그가 남긴 물질입니까? 강한 군대입니까? 영토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해 주신 것은 그가 가진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온 삶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롯에게 땅 선택권을 양보한 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동서남북을 보아라, 내가 이 땅을 너와 네 후손들에게 줄 것이다.’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믿음으로 순종하여 제사를 드린 후에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고 그 믿음을 인정해 주시는 말씀이셨습니다.

 

남다른 기도의 능력을 받아 헌신했던 현신애 권사님이 있습니다.

이 권사님은 기도의 헌신을 통해 많은 역사와 업적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 권사님이 어느 날 죽어 천국에 갔고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권사님은 너무나 반가워서 주님 저 현신애 권사가 왔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를 통해 주님의 이름을 전하며 살던 현신애 권사가 왔어요.’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에 나는 너를 모른다. 네가 언제 나를 위해 그 일을 했냐? 너를 위해 그 일을 했지.’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현신애 권사님은 이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고 다시 살아난 후에는 이제까지 살아온 그 잘못된 믿음의 삶을 회개하고, 그간 모아 두었던 모든 재물을 북한 선교회에 기증하고,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이 자기를 위해 사는 잘못된 믿음의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믿음의 삶을 살라고 증거 하였다고 합니다.

 

이 권사님이 조용기 목사님 찾아가서 주님이 나도 모른다고 하시고 목사님도 모른다고 하셨다.’고 하면서 목사님도 저와 같이 회개하고 돌이키실 것을 권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당시 조용기 목사님이 어떤 분이셨습니까?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신 분이셨습니다. 불광동 천막 교회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고, 오산리 금식기도원을 설립하고, 열정적으로 해외선교에 힘쓰는 등 정말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업적을 이루고 계실 때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조용기 목사님 같으신 분이 없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현신애 권사님은 그것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삶이 아니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신애 권사님이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분들은 그 누구보다 더 열심을 다해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모른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 산 그 일들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가 그 영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예를 들어볼까요?

다윗은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을 그 목자로 삼고 평생을 충성스럽게 살았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다윗을 인정해 주시면서 저는 나와 마음이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산 결과 이스라엘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주 큰 죄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해 살아온 삶의 결과와 열매를 알아보기 위해 한 인구조사를 왜 하나님은 죄라고 하셨습니까? 인구조사를 통해 다윗은 이제까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세워온 다윗 왕국의 영광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치 자기 업적인 것 같이 내 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같았습니다.

당시에도 유명한 대제사장과 거룩한 제사장들, 이름 난 서귀 관들과 존경 받았던 바리새인들과 그 헌신이 남달랐던 열심당원들이 허다했습니다. 또 그 생활이 경건했던 엣세네파에 속한 기라성 같은 믿음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아와 회개하고 돌이켜 그 삶이 변화 되었던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충성된 삶을 살고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위해 희생과 헌신의 삶의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의 삶이 바로 그 받은 므나를 남긴 사람, 그래서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는 삶을 산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므나의 비유를 보면 그 주인은 한 므나를 받고 열 므나를 남긴 사람들에게는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고, 한 므나를 받고 다섯 므나를 남긴 그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줄 것이지만, 한 므나를 받고 수건으로 싸서 두었다가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온 사람에게서는 그 있는 한 므나도 빼앗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열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전해주고 있는 중요한 것은 그 남긴 므나를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남긴 므나를 자기를 위해 사용하면 이런 사람들은 사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것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평생 하나님을 위해 살아왔어도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은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을까요 적을까요?

 

이제 예수님이 우리 삶을 판단하시는 날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가 살아온 잘못된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살아온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으로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삶이 되도록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삶의 결단이 이 말씀을 전하고 듣는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에베소서 2:8-9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구원받은 것을 인하여서는 누구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구원받은 삭개오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와 같은 이런 삶의 결단에 대해 에베소서 2: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은혜로 우리를 예정하사 택하시고, 때를 따라 불러 주시고 믿음 주시고,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너희는 더 이상 네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흔적을 남기며 살길원하십니다. 이렇게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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