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언서

생명을 살리는 교회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7. 16. 14:30

생명을 살리는 교회

에스겔 47:1-12

 

1.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시면서 영생하시는 분이시며, 그 어디에도 안 계신 곳이 없으신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닮은 영적인 존재이며, 인격적인 존재인 천사를 창조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을 닮은 영적인 존재, 인격적인 존재이면서, 육체까지도 가진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사와 인간은 하나님과 달리 그 존재 방식에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어디나 다 계시는 무소부재 하신 분이시지만, 피조물인 천사나 인간은 어느 한 장소에 있게 되면 동시에 다른 장소에는 있을 수가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사와 사람은 그 존재하는 자리의 제한 속에 살면서,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그 영이 죽은 사람들은 이후 영적인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오직 육체적인 감각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한계입니다. 사람들의 이 절망과 한계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사람들을 위하여 특별한 장소를 정하여 주시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장소가 바로 성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만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후 성전이 건축되었고, 이 성전이 하나님을 섬기는 중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과 바벨론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져서 예루살렘 성성전은 파괴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던 장소는 회당이었습니다.

이후 이 회당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회당예배가 성전 예배와 달랐던 점은, 짐승을 잡아드렸던 제사 의식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회당 다음으로 신앙생활의 중심지가 된 장소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배는 회당예배를 그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예배도 회당예배 형식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러면 성막에서 교회까지 이 모든 장소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장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이 임재해 주셨던 장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어느 곳에나 다 계시는 분이시고, 안 계신 곳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그 이름을 두신 회당과 교회와 같은 장소들에 임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막이었던 성막에도 임재해 주셨고, 화려하게 건축되었던 성전에도 임재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아름답고 호화로운 성전에도 임재해 주셨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다시 건축하였던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었던 느헤미야 성전에도 임재해 주셨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전이나 교회는 그 외형적인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전이나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임재가 있으냐? 임재가 없느냐? 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습니까?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이 성전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앙을 코란데오라고 합니다.

코란데오란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또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드려지는 예배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참여하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앞에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해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의 예배 생활을 기록하고 있는 시편의 말씀들을 보면, 구약의 성도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성전으로 나아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이런 사모함,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런 간절함이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특별히 임재해 주신 곳이 또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은 어디입니까? 요한복음 2:19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1절 말씀에서는 이 성전은 예수께서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셨을 때, 그 예수님의 몸을 성전 삼고 그 안에 성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자 하나님이 임재해 계셨던 그 예수님의 육체를 또 성전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특별히 임재해 주신 장소가 또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6:19절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는 우리들이 몸 안에 성령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데, 이렇게 성령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우리 몸을 또 성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 하나님의 성전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의 신인 마귀에게 속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이 예수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 믿고 그 마음 안에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너희는,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 된 너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 삼고 계시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성전에서 도박을 하면 되겠습니까? 성전에서 사기치고 각종 범죄를 행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 쫒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전을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한 시장으로 만들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성전삼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해 주신 장소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를 교회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믿음을 가진 사람 두 세 명이 모여 있는 곳에 함께 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믿고 섬겼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를 구약의 교회라고 하고, 신약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신약의 교회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해 주신 장소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1:22절 말씀을 보면 성 안의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장차 들어가서 살게 될 천국이 또 다른 성전인데, 그 천국은 성부 하나님과 어린양 되신 성자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곳, 하늘에 있는 성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 성전이 사실 모든 성전의 원형입니다.

 

2. 교회란 어떤 곳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성전 혹은 교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전 혹은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이상의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로써 성막, 성전, 회당, 교회를 말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임재해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나,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몸이나, 성도들이 모여서 이룬 신. 구약 교회 공동체나,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고 통치하고 계신 천국을 통칭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다양한 모습의 교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이 곧 성전이고 또 교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교회의 가장 구별되는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교회의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교회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사망과 죽음에 매여 있는 땅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는 생명 그 자체이실 뿐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이 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 바로 생명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자의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함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특징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은 자였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도 같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까? 예수 믿고 그 죄를 사함 받아 거듭난 사람, 하나님 보내 주신 성령 안에서 새 생명을 다시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 요한복음 3:16에서는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에 대해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의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경인 골로새서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가리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하나님 자녀들의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바로 생명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마귀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3.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중요한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생명,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살았던 그 생명, 오늘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가지고 살고 있는 이 생명은 과연 무엇입니까? 성경에서는 이 생명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구약 히브리어에서 생명을 말하는 단어는 ‘네페쉬입니다.

네페쉬는 인간의 호흡과 연관 되어 있는 단어이며, 또 우리 몸의 와 연관 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이런 네페쉬라는 단어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호흡과 연관되어 있고, 우리 몸의 피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생명은 호흡이 정지되면 끝이 나고, 심장이 멈추면 끝이 납니다.

 

신약 헬라어에서 생명을 말하는 단어에는 조에푸시케가 있습니다.

이 두 단어 중에 푸시케는 구약의 네페쉬와 같이 육체적인 생명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때문에 육체를 가진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다 죽습니다. 우리들이 지금은 살아있어도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푸시케는 인간의 제한된 생명, 유한한 생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에는 다릅니다.

이 생명은 유한한 생명, 제한된 생명,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 영생하는 생명 영적인 생명을 말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두 생명의 관계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푸시케는 인간의 제한된 육체적인 생명을 말하고 있고, 조에는 인간의 영생불사의 생명인 영적인 생명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것은 육신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죽음으로 끝이 나도, 우리의 영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육신의 생애를 다 살고 죽게 될 때, 우리에게서는 영혼과 육신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육신은 죽어서 그 본향인 땅으로 돌아가고, 우리의 영은 우리가 가지고 살아 온 믿음의 유무에 따라, 예수 믿는 성도들의 영은 낙원으로 들어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불신자들의 영은 음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백 보좌 심판을 앞두고 부활하게 될 때까지 낙원과 음부에 머무르게 됩니다.

백 보좌 심판의 때가 되면, 예수를 믿고 낙원에 가 있던 성도들의 영은 생명의 부활로 부활하게 되고, 예수를 믿지 않아서 음부에 가 있던 불신자들의 영은 심판의 부활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고,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 불신자들은 지옥에 들어가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토록 그 지으며 살아온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때 천국에 가야지 지옥에 가서는 안 됩니다. 왜 지옥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까?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 계속 타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몸에 화상을 입어 보셨습니까? 화상을 조금만 입었어도 얼마나 뜨겁습니까? 찬물로 그 화상을 입은 부위를 아무리 씻어내어도 그 뜨거움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심지어 화상을 입은 곳에 얼음찜질을 해도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런데 지옥은 어떤 곳이라고요.

마치 용광로와 같이 계속 불타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고 하니, 그 당하며 사는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나 됩니까?

 

지옥의 고통을 쉽게 비유해 보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요리하실 줄 아시지요. 요리할 때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구어서, 생선에 소금을 쳐서 그 후라이팬 위에 올려놓으면, 그 뜨거운 기름 속에서 고기는 튀겨지며 익습니다. 지옥이 바로 이런 곳입니다. 지옥은 마치 영원토록 후라이팬 위에서 튀겨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곳입니다. 그 뜨거운 고통은 어느 한순간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당하게 되는 고통입니다.

 

하나님이 이 끔찍한 말씀을 미리 해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옥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지옥에는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까? 지옥 가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지옥에 가지 않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단 한 길 예수님을 구주로 주님으로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다른 것은 다 못해도 예수님은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되 잘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아는 사람들이 지옥 가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사랑 중에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잔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으로 그 육신의 생명은 끝이 나도, 영적인 생명은 끝나지 않고 마치 잠을 자는 것 같이 낙원음부에 있다가, 때가 되면 우리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듯이 그렇게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종교적인 행위가 이루어졌던 장소였습니다. 이런 목적을 가진 시설에는 성막과 회당과 교회가 있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예수님의 몸,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몸, 하나님을 믿었던 .구약 성도들의 모임을 성전이라고 하였고, 이 모든 성전의 원형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과 교회는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런 성전과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생명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 생명을 전해 주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4. 교회가 존재 하는 목적

 

그러면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가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에스겔서 47장의 말씀을 통해서, 교회가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목적 즉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며 살아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 교회는 생명을 살려 나가는 근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에스겔은 성전에서 그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물이 일천 척을 흘러내린 후에 건너게 하는데 물에 발목이 잠겼습니다.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한 후에 건너게 하는데 물에 무릎이 잠겼습니다.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고 건너게 하는데 물이 허리에까지 미쳤습니다.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한 후 건너게 하는데 헤엄칠 물이 되었습니다. 이 물이 계속 흘러서 아라바 사해 바다로 흘러 들어가자, 죽었던 사해 바다가 살아나고,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물들이 살아나고 고기도 심히 많아졌다고 합니다.

 

에스겔서 47장에 나오는 이 아라바 광야는 여리고라는 도시가 있었던 그 광야입니다.

오늘날에는 이곳에 물이 많이 흘러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갈릴리 호수 물을 이용하려고 요단강으로 흘러가는 수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가 기록될 그 당시에는 아주 많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흘러내리는 강 좌우에는 각종 실과약초들이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이 전해 주고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단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었듯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흘러 내려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 보여주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근원지가 되었듯이, 교회도 이 세상의 생명을 살리는 근원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은, 조에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과 생명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고 생명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수가 성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왜 영혼의 갈증이 멈추어지게 됩니까?

우리의 상황이 좋아져서 그렇습니까? 우리의 소원하던 일들이 다 이루어져서 그렇습니까? 이런 것들 때문에 영혼의 만족함을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의 만족함은 예수를 믿게 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내 주신 성령이 생수의 근원이 되어 우리 영혼의 갈증이 멈추어지고, 우리 영혼이 만족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이 말씀은 마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온 세상의 생명을 살리는 물이 되었듯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사망과 죽음과 땅에서 탄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흘러 나가서 죽어 있는 영혼을 살려주는 물이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인간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고 있는 살아있는 생명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전파되어 갑니다.

 

우리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상처를 입게 되면, 그 옆에 있는 세포가 분열해서 상처 난 곳을 소성하게 하고, 손상을 입은 곳을 새로운 세포로 채워나가서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기관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시작되어 세상으로 흘러가는 이 생명 운동은 결코 정지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다를 향해 계속 흘러갔듯이, 교회가 가진 이 생명도 계속 세상으로 세상으로 흘러가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가 이런 교회의 생명 운동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생명 운동은, 유럽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가다가, 나중에는 대서양을 넘어 아메리카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메리카에서 다시 꽃을 피운 이 생명 운동은 이제 태평양을 넘어 아시아에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동쪽에 있는 우리나라도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생명 운동은 계속 서진하여 지금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나아 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주시는 생명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는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생명 운동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예루살렘까지 이르게 되고,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게 되면 바로 그날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이 될 것입니다.

 

또 현재 복음을 자기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갖지 못한 종족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아멘. 요즘은 컴퓨터의 발달로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문자를 만들어 주고, 그 만들어 준 문자로 성경을 번역해 주는 일이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10대 박해라는 극한 박해 상황 가운데서도 그들이 받아 소유하게 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발각되면 십자가에 달려 콜타르를 뒤집어쓰고 인간 횃불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무서운 사자의 밥이 되어 죽어가야 하는 극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복음을 세상에 전해 주는 일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당시 성도들도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순교의 위험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과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겪으셨던 십자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당하게 될 박해의 고통 들을 이겨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은 믿는 믿음 안에서, 자신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육신의 생명을 기꺼이 버리는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의 소유하였던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유하였던 사도바울의 다른 증거를 들어보십시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이 고백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가졌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했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이미 소유하고 있었던 성도들은 그 자신이 소유한 생명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 주었습니다. 성도들의 이런 증거들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증거는 결국 로마를 복음화하였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습니까?

 

또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둘째, 교회는 복음으로 죽어 있는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죽어 있는 세상을 살려 나가는 일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어 있는 세상을 살려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주어서, 그 죽어 있는 영혼들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충돌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죽어 있는 영혼이 충돌하게 될 때, 죽어 있던 영혼들이 충격을 받고 깨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하라고 우리들을 먼저 불러 주셨습니다. 혹 가족 중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서 생명의 말씀과 죽어 있는 영혼이 부딪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죽어 있는 영혼을 깨우고 살리는 일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아멘

 

신앙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예수 믿기 전에는 생명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생명이 없었던 우리에게 누군가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었고, 그렇게 전해 받은 생명의 말씀이 어느 시점에 우리 영혼을 건드려서 우리의 죽은 영혼이 깨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오늘날 우리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은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조상들이 가졌던 신앙을 다 잃어버리고 마치 마른 뼈와 같이 죽어 있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 선지자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자 죽은 뼈들이 서로 모이고 힘줄이 붙고 살이 붙어서 살아있는 사람의 형체를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아직 부족하였습니다.

에스겔이 그 살아난 사람들을 보면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자 생기 즉 성령의 역사를 통해 죽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입니다.

 

에스겔서 47장은 이렇게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루어질 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세상의 생명을 살려주는 일을 했듯이, 믿음이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죽어 있는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 예수를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을 통해 이루어질 일들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서도 이렇게 죽어 있는 생명을 살려내실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수를 날마다 공급받아서 먹고 마시며 사는 사람들은, 저 복음의 불모지인 중동지역에 선교사로 가게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늘 공급받으며 살기 때문에, 사람의 도움과 격려가 없이도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가진 성도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은 가만 있지 못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은 그 속성상 계속 움직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생명의 역사는 지금 전 세계 속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받아서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로 값없이 주신 이 생명을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생명이 다시 살아나게 될 때,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이 생명의 복음을, 그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참빛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죽어 있는 세상 사람들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생명의 증인으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에스겔이 보았던 생명을 살려 나가는 교회에 대한 환상을,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이루고 성취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예언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옐로카드  (8) 2024.10.13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는 성도  (0) 2024.05.12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  (0) 2022.05.08
하나님의 사랑  (0) 2022.04.10
기억하고 보상해 주시는 하나님  (0)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