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언서

하나님의 아름다움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5. 3. 30. 14:48

하나님의 아름다움

이사야 35:1-4

 

1.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섭리로 다스리시는 아름다운 세상

 

창세기 1을 보면,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시며 아주 흡족해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혹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그 기능을 잘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아주 만족해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입니까?

우리가 볼 때 아주 아름다운 곳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이 풍부하게 흐르는 과 그 주변에 있는 기름진 평야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산림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드넓은 초원이나, 산언덕을 따라 넓게 조성되어 있는 과수원목장들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가 하면, 생물이라고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보이는 메마른 사막은 어떻습니까?

도저히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보이는 황무지와 같은 광야는 어떻습니까? 아니면 1년 내내 빙하와 얼음과 눈으로 덮혀 있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도 힘든 곳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곳은 사람이 살만한 환경이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사람들이 살기 좋아 보이는 환경들도 있고,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보이는 환경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그 창조된 세상을 보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풍성한 생명들이 소성하고 있는 옥토만 보고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때 아주 악조건 같아 보이는 메마르고 건조한 광야와 사막을 보시면서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창조하신 모든 것이 본래 목적한 기능들을 잘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자연 현상만 바라보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겪으며 살아가는 그 모든 삶들, 행복, 희망, 보람, 성취와 같은 긍정적인 삶의 현상들은 물론, 슬픔, 이별, 고통, 고뇌와 같은 부정적인 삶의 현상들까지도 다 포함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세상 만물과 세상만사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고 계신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 속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속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영광,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와 목적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속에 담겨 있는 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주어진 삶을 긍정하며 즐기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성공하고 성취하게 될 때는 감사하고 즐거워하지만, 실패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는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그 살아가는 삶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섭리로 다스리시는 은혜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런 사람들은 시험당하며 사는 삶까지 의미 있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할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런 사람들은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인생에서 값진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71, 67절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 안에서 세상 만물을, 세상만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또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바라보는 영적인 눈이 열린 성도로 살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2.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

 

영적인 눈이 열린 선지자, 믿음의 안목을 가졌던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을 보면,

1-34장에서는, 범죄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35-39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하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0-66장에서는, 장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구분 속에서 보면,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이사야서 35장의 말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살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아갔던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바벨론 포로 생활, 마치 광야, 메마른 땅이나, 사막과 같은 삶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사람이 살기 힘든 곳입니다. 갖가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한편으로는 척박한 곳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광야는 이렇게 이중성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척박하고 살기 어려운 땅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이 있는 신앙의 땅이 바로 광야였습니다.

 

사람들은 광야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광야는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이 이루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 광야에서 엘리야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이 광야에서 천사들이 주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또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40년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과 아주 밀착된 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광야는 한편으로는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땅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도우심이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이 바로 광야와 같은 그런 땅이었습니다.

바벨론은 한편으로는 척박하고 혹독한 시험의 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광야와 같았던 그 악조건들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조상들이 가졌던 신앙을 회복하게 해주었던 복된 땅이었습니다.

 

다음은 메마른 땅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메마른 땅이 어떤 곳입니까?

메마른 땅은 건조하고 가뭄이 든 땅을 말합니다. 이런 땅에서는 농사가 잘되지 않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메마른 땅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 , 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메마른 땅은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가 어려운 곳입니다. 바벨론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마른 땅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메마른 땅도 하나님이 계시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마른 땅과 같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 메추라기를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메마른 땅의 특징, 인간의 노력과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먹고, 입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라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이런 광야와 메마른 땅에서 기뻐하게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뻐한다.’라는 이 말씀이 시편에서 사용될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기뻐하여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한다.’라는 이 말씀이 선지 서에서는 시편과 다르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지 서에서는 시편에서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기뻐하는 것을 말씀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된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분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광야와 같은 곳, 메마른 땅과 같은 곳인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그 어려운 삶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바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아멘

 

이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비록 광야와 같이 어려운 삶이고, 메마른 땅과 같이 힘겨운 삶일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면, 그런 우리의 삶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면 기쁨을 느끼고 환희를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렇게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가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이라고 합니까?

마태복음 7:13-14절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이 힘들고 어려운 삶이라고 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광야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이 힘겨운 삶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은 후에 그 지나갈 수 있는 이 많아졌습니까? 적어졌습니까? 그 나아가는 이 좁아졌습니까? 넓어졌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은 후 우리는 많은 문을 막고 살아왔습니다. 많은 길을 포기하고 살아왔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의 문 이신 예수님, 우리의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 좁은 문, 좁은 길로 살아왔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나아가는 그 넓은 문을 포기하고, 좁은 문이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고,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그 넓은 길을 포기하고, 좁고 협착한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이런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그 넓은 문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며 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 가는 넓은 길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좁은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보며 큰 기쁨을 느끼신다고 합니다. 이런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마치 광야와 같고, 메마른 땅과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찾는 이가 적은 길이라고 합니다. 이 길은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슨 큰일을 하고, 무슨 큰 역사를 이루어야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신앙생활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믿음, 이 확신을 가지고 늘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6:29절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 이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2025년도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다음은 사막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1절 하반 절부터 다시 보겠습니다.

“....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사막은 네게브 사막입니다.

사막은 어떤 곳입니까? 평상시의 사막은 물이 없는 죽음의 땅입니다. 그래서 동물도 식물도 생존하기 어려운 땅이 사막입니다.

 

그러나 이런 땅에서도 동물들이 살고 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새벽마다 내려 주시는 이슬이 동. 식물들이 살 수 있게 해줍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도 40년 동안 이런 사막에서 매일 새벽이슬같이 내리는 만나를 먹고 살았었습니다.

 

이 네게브 지역은 아주 비옥한 땅입니다.

평상시에는 물이 없는 사막이지만, 우기가 되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개울에 물이 흐르고, 그 개울 주변 땅에서는 각종 나무풀들, 을 내고, 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막이 백합화같이 필 것이라는 이 말씀은, 바로 우기를 맞이한 네게브 지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제주도의 넓은 들판에 핀 유체 꽂을 보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장면을 1절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네게브 지역에 은혜로 비를 내려 주시면, 사막에 백합화가 피어나는 풍성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게브 사막 지역에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셨듯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은 비록 사막과 같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이들에게도 사막에 백합화가 피어나게 하셨듯이 동일하게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고 합니다.

 

다시 1절을 보겠습니다.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즐거워하며라는 이 단어는 예배와 관련된 기쁨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와 구원을 기뻐하며, 활짝 피어난 백합화와 같이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같고, 메마른 땅과 같고, 사막 같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기뻐하며 예배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죄악 된 세상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기쁨과 감사 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살아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비를 내려 주시면 넓은 사막에 수많은 꽃들이 하늘을 향해 아름답게 피어나듯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성도들도 그렇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간다면, 이런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이며,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고 살고 있는 성도라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이 비록 광야의 삶과 같이 어려울지라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는 것이 기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배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고, 예배 가운데 함께 해주시면서, 성령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은혜들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비록 광야같이 보이고, 메마른 땅과 같이 보이고, 사막과 같아 보이더라도, 우리들에게는 세상이 전혀 알 수 없는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며, 우리의 예배 생활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믿음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나는 평생의 삶을 믿음으로 살겠다.’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겠다.’라는 믿음의 선한 결단들을 하며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성도들이 받으며 살아가는 은혜의 이중성

 

이제 2절에서는 이렇게 광야, 메마른 땅, 사막 같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게 될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된다고 합니까?

그것은 레바논의 영광,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레바논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레바논산은 고도가 2,814미터로 우리나라의 백두산보다 높습니다. 그래서 그 산 정상에는 일본의 후지산과 같이 항상 눈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흰 산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백두산이 민족의 신령한 산으로 인정받고 있듯이, 레바논산은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장엄함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갈멜산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름진 산입니다. 사론 평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름진 평야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게 될, 레바논의 영광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한편으로는 레바논산과 같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능력을 누리며 살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갈멜산과 사론 평야 같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바논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도들이 믿고 섬기며 살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크고, 영화로우신 분이십니다. 광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 권세와 능력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은 이런 은혜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살게 됩니다.

 

갈멜과 사론과 같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며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상한 보살핌에 대해 요한 32절에서는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되는 복을 누리며 살기 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 영혼을 거듭나게 해주시고, 심성을 변화시켜 주시고, 하나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은혜 가운데서 만족을 누리며 살게 하시는 것이 갈멜과 사론 같은 복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분이심과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어서 세밀한 사랑의 보살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이 영화로우시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뿐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랑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약속을 해 주고 있습니까?

이사야서 35:3-4절입니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첫째, 하나님이 약속을 주신 대상이 누구입니까?

 

약한 손을 가진 자, 떨리는 무릎을 가진 자, 겁내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강하다, 내가 능력 있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약한 손을 가진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손은 능력과 힘을 상징합니다. 손이 약하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세상 적으로 약하고 연약하고, 능력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강하게 하시고, 또 이런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 분이십니다.

 

떨리는 무릎을 가진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무릎은 기도의 무릎을 상징합니다. 이 사람은 기도에 연약한 자 즉 영적으로 약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 받은 은사가 적으면서도 마치 자기가 최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인양하는 사람들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이 받은 은사가 얼마이든지 관계없이, 늘 자신이 영적으로 약하고 부족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 주신 은혜 안에서 강하게 하셔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겁내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 사람들은 마음이 약하고 믿음이 약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믿음 없음을 한탄하며 큰 믿음 주시기를 간구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믿음을 굳게 해 주시고, 또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해 주셔서,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약하다고 그냥 은혜를 주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약함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약함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약함을 알았으면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강하신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함을 포기하고, 강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살펴보면, 믿음도 별로 없는 사람이, 나는 믿음이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실 수가 없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먼저 자신의 믿음이 작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믿음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런 사람들에게 큰 믿음을 주셔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며 사는 기도를 살펴보면, 기도의 능력도 없으면서, 자신에게 기도의 능력이 있는 것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에게 기도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기도의 능력도 주시고, 기도 응답도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을 보면 자꾸 비교해서 보도록 합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서 보면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쓰입니까?

자신을 사람들 앞에 세우지 않고,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세워서, 하나님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힘도, 지식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람, 가난한 심령을 가지게 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며 살아가는 겸손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무능력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늘 가난한 심령을 소유한 성도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아멘.

 

둘째,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어떤 약속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겸손한 성도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고 있습니까?

4절 하반 절입니다.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하나님이 오셔서 네 원수를 갚아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오셔서 너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너를 대적의 손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성도, 겸손한 성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참빛교회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겠습니까? 우리는 늘 가난한 마음을 가진 성도, 겸손한 마음을 가진 성도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능력의 손, 은혜의 손으로, 우리들의 삶 속에 은혜와 능력으로 함께 해 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삶이 비록 세상 사람들의 보기에는 광야 같고, 메마른 땅 같고, 사막 같은 삶일지라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레바논의 영광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은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된다고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약한 을 강하게 하여 주시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시고, 겁내는 자를 굳세게 하여 주심으로,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 원수를 갚아주시고, 우리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믿음 이 확신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믿음의 삶을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내려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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