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2. 7. 08:42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창세기 12:1-4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요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이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면, 땅을 주시고, 후손을 주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더하여 이 복은 아브라함에게서 끝나는 복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같이 세상 많은 민족들 중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누리며 살 복 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이 75세 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의 순종을 통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씀은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된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신앙생활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떠날 것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의 시작은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갖기 전에 좋아하던 스포츠도 떠나고, 오락도 떠나고, 세상 유행가도 떠나고, 바둑과 장기도 떠나고, 심지어 세상 친구들도 떠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즐기던 술을 떠나고, 담배를 떠납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 바로 우리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첫 번째 요구는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아브라함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바로 믿음으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기 쉬웠겠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익숙한 고향, 말이 통하는 이웃, 모든 생활의 기반이 있는 곳을 떠나 어딘지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 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그 첫 번째 신앙의 결단을 할 때, 고향과 친척은 떠났지만 아직 아비 집은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게 하란으로 떠나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익숙한 문화와 익숙한 말과 익숙한 사람들을 떠나라고 하실까요? 그 이유는 신앙생활의 시작에 우리가 확실하게 이런 것들을 떠나지 아니하면, 신앙을 가진 이후에 신앙 안에서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이제까지 살아온 익숙한 과거 생활로 쉽게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처음 시작할 때 이런 것들을 확실하게 떠나지 아니하면, 그 생활에서는 변화가 거의 없게 되어서 신앙을 가지기 전이나 신앙을 가진 후가 별로 다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신앙이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 듯 전혀 변화가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라고 하는 하시는 것입니다.

 

- 바울을 보십시오. 그도 이전에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을 예수를 믿고 난 후 배설물 같이 버리게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고 부르셨을 때,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아브라함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얼마나 그 떠나야 하는 것을 떠나지 못하고 그 버려야 하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모습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의 제자가 되어 따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이 부자청년은 버릴 것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길 원하였던 것입니다. 혹시 이 부자청년과 같이 우리들도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고자 하는 소원은 있으나 버려야 하는 것들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순종은 결함이 있고 불완전한 순종일지라도, 그 믿음으로 떠남 그 자체는 위대한 신앙의 결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 떠남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아직 불완전한 순종이었지만, 세상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향을 친척을 떠난 것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떠남을 신앙의 행위로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이 나중에 신앙이 자라고, 신앙이 성숙하여지게 되어서 완전한 순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언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완전한 떠남을 떠나게 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여 롯을 떠난 것은, 애굽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많은 소유를 얻어 다시 가나안에 올라오게 되었을 때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초장과 우물을 놓고 다투게 됩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이런 다툼은 믿음의 사람의 바람직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조카 롯에게 자신이 선택할 곳을 먼저 선택하여 떠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셨던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는 요구를 온전히 순종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주신 약속들을 믿고,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날 것은 떠나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버려야 하는 재물을 버리지 못하고 근심하고 떠나갔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이 주는 힘과 매력을 아는 부자들이 그 가진 재물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는 주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부르셨을 때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주님을 쫒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버릴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을 향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이든지 버린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그 버린 것의 여러 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핍박을 겸하여 받은 사람 중에는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약속의 말씀들을 믿고, 버릴 것은 버리고, 순종할 것은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이런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와 복을 다 받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또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둘째,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 요구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아브라함의 상태에 대해 히브리서 1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그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 어디가 네가 가야할 구체적인 목표다.’ 라고 명확한 지시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그 가야할 목표지점이 어딘지 말지 못하고 떠나갔다는 말씀이 전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믿음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나아갑니다.

 

성경은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은 매일 매일을 믿음으로 사는 삶이고, 매일 매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사는 삶이고, 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매일 매일 순종하여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일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네게 주신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이른 아브라함에게 어떤 상황이 준비되어 있었습니까? 기근입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에 땅에서 처음 만난 것은 기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만난 기근을 이기지 못하고 당시 물이 풍부하다고 열려지고 있는 이집트로 갔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서 아내를 빼앗기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겨우 애굽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의 삶에 기근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근이 올 때 그 때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일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때 믿음을 보이면 우리들은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를 경험하고 기적적인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근이 왔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물이 풍부한 애굽으로 피난 가서, 기근을 면하고, 또 기근의 때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보통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 이렇게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실수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닥치게 될 때 먼저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이 더 나아보입니다. 더 지혜 있어 보입니다. 더 유익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 보이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났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비록 인간의 보기에는 미련해 보여도 그것이 결국 복이 되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당시에는 좋아보여도 결국 그 길은 실패하는 길이 되고, 망하는 길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 실수를 어떻게 극복하게 됩니까?

17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실 때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으면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전혀 극복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판단하여서 실수는 아브라함이 하고, 아브라함이 실수한 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렇습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죄의 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잘못된 식습관으로 병은 우리가 걸렸는데 그 병을 치료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지혜 없어서 망하는 길을 선택하여 가는데 그것을 변하시켜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비록 어려지만 가나안 땅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힘든 환경들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때가 바로 우리들이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나갈 때입니다. 이때가 바로 우리가 가진 믿음을 하나님께 증명해 보일 때인 것입니다. 이때를 우리는 우리가 가진 믿음으로 어려움도 이기고 고난도 이기고 환경도 극복하는 살아있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떠날 것은 떠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사는 것입니다.

 

또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셋째, 범사에 감사하며 이웃을 축복하는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으로 버릴 것을 버리고, 또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순종하는 삶을 살면, 어떤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 첫째는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 둘째는 땅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 셋째는 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손에 대한 약속, 땅에 대한 약속은 이후 때가 되었을 때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하는 대로,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해 주신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성도가 잘 대해 주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면 그 복이 그 사람에게 임하고, 또 어렵게 하는 사람을 저주를 하면 저주가 그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과 저주의 통로가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사람들이 모인 교인들을 비판하지 말고, 성도들 사이에 서로 서로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교회는 적지만 한국과 세계를 축복하는 교회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북한을 축복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을 축복하고, 이라크를 축복하고 온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오히려 축복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생애가 복된 생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세상으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또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축복은 우리가 축복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우리는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가족을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우리와 이 세상 사람들의 다른 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서 또 범사에 감사하고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고 하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전쟁에서 승리주심에 감사하여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렸고

- 하나님께서 그의 상급이 되어주심을 인해 늘 감사했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아브라함은 늘 축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그는 롯을 떠나보내면서 축복하고

- 이스마엘을 떠나보내면서도 축복하고

- 그의 종에게 이삭의 신부를 찾아오라고 보낼 때도 축복하고

- 그랄 왕 아비멜렉이 그를 찾아왔을 때도 축복하였습니다.

참 신앙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그 만나는 이웃을 축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한 주간의 삶을 살 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먼저는 이 세상의 욕심에서는 떠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음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삶이 남은 한 주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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