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중요원리
로마서 11:36
바다를 항해는 배는 무엇에 의해 그 나아가는 방향이 결정됩니까?
배에 달려 있는 작은 키가 그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러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무엇에 의해서 그 나아가는 방향이 결정됩니까? 비행기 꼬리 날개에 달려 있는 방향키입니다. 이것에 의해 비행기가 날아가는 방향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 방향을 결정짓는 키와 같은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이 원리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오늘은 우리 신앙생활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원리에 대해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원리는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 중심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느냐? 아니면 사람이 그 중심이 되는 신앙생활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신앙을 인정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옳다 인정함을 받으나 하나님께는 인정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일부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신앙을 보증해 주시고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두 부류의 사람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람의 입장에 서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라면,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왕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어떠합니까? 사람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좋아 할 수 있게 생활을 했던 사울 왕은 그 왕위를 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생활을 했던 다윗에게는 “저는 나와 마음이 합한 사람이다. 내가 그 위를 영원히 폐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시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 중심 사상은 우리 장로교의 기본신앙입니다.
장로교 신앙의 모태가 되는 것은 바로 칼빈주의입니다. 이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이 바로 하나님 중심사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절대주권사상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주권적인 의지로, 인간의 영적인 부분, 도덕적인 부분을 통치하시고, 또 이 세상의 자연계와 이 우주전체의 모든 영역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는 사상이 바로 하나님 주권 사상입니다.
하나님 주권 사상에 대해 칼빈주의 신학자 워필드 박사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손을 보며,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며, 이 세상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태도로 자신의 전 생애를 살며, 인간의 신앙문제 구원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여서, 자아의존적인 구원관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주권 사상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상을 말합니다.
- 이것은 우리의 지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 이것은 우리의 감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 이것은 우리의 의지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주권사상은 로마서 11:36절 말씀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 주권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삶의 시작도 하나님 안에서 시작하고, 매일 매일의 삶의 진행도 하나님 안에서 진행하고, 하루의 삶의 마침도 하나님 안에서 마치는 사람들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창조주로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영원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시간 위에서 인류 역사를 한 눈에 다 보고 계시면서 인류역사를 주권적으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 중심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인류 역사를 주권적으로 주도해 가시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인간 중심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다. 한 순간을 사는 자기 입장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그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인정해주시고, 사람을 그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인정해주시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보기에는 혹 인간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삶이 더 나아보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는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직장생활도 아니 그 무슨 생활이라도 하나님을 그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하나님 중심 사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과 인류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우리의 신앙생활의 방향을 결정짓는 또 다른 원리는 무엇입니까?
둘째, 성경 중심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히 계시해 주신 것이 바로 신구약 성경 66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과 규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중심적인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밖으로 넘어가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철저히 성경중심적인 신앙입니다. 우리의 이런 신앙고백이 우리 주보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참빛교회는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원리요 규범이요 질서로 믿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성경중심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고백할 때 그 고백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증거가 아니더라도 성경 스스로가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 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성경중심 원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2항의 첫 부분에서 가르치는 원리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유일한 규칙입니다.
2. 또 우리는 성경이 구약의 옛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의 시대에 적용된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오늘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오늘 내게 교훈을 주기위해 기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3. 또 성경 원본 즉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원본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35절에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 우리는 이런 신조에 근거하여 성경의 유기적 축자영감설을 믿습니다.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한자 한자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영감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들을 성경기록자로 사용하실 때,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전혀 오류가 없이 기록하도록 영감 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영감 설을 믿되 유기적 완전 축자영감설을 믿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저자의 모든 특성들을 유기적으로 사용하시되 전혀 오류가 없이 글자 한자 한자를 영감 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원본이 아닙니다.
원본을 보고 사람들이 배겨 쓴 복사본입니다. 그리고 이 복 사본은 현재 약 1만 2천여 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사본들 사이에는 사소한 차이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미미한 차이라서 성경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본으로 내려온 성경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간혹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차이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 그릇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성경은 엄밀성과 정확성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 가운데서 복사되어 온 것으로 그 차이는 미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우리는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 무오 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모든 일들과 이치들에 대하여 유일무이한 절대 기준인 것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둡니다.
우리는 그 어떤 주관적이고 신비한 영적인 체험보다 성경을 참 된 것으로 믿습니다. 쯔빙글리는 일찍이 종교개혁에 대하여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신앙은 유사종교요,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역사상 어떤 유명한 인물이나 역사상의 위대한 산물에 두지 아니하고 오직 성경 그 자체에 권위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성경 안에서 생각하고 연구하고 해석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은 우리도 침묵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전진할 때 우리도 전진하며 성경이 멈춰서면 우리도 멈춰섭니다. 우리는 성경만이 우리의 가치관, 인생관, 구원관, 내세관, 역사관, 우주관을 바로 세워주는 진리의 근원인 줄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방향을 결정짓는 또 다른 원리는 무엇입니까?
셋째, 교회 중심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사도신경을 통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사오며’ 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성도가 믿음 안에서 교제하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란 어떤 곳인가?
00교회라는 교회 간판을 붙여 놓았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가 믿음의 고백을 했던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의 기초는 바로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향한 바른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로 반석되시는 예수님의 기초위에 세워져 나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과 그 자녀들의 공동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세워진 교회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즘 교회에서 주는 쌀과 라면과 생필품들을 받으려고 모인 사람들을 가지고 교회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병고침을 받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인 곳 또한 교회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곧 성령의 전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데 이렇게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하나님의 영이 계신 성전, 곧 성령의 전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우리는 하늘의 예루살렘 혹은 새 예루살렘이라고도 합니다.
또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도 합니다.
이 교회의 시작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상 이 교회운동은 창세기 3:15절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과 반목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아직도 교회 운동이 오늘날과 같은 형식을 갖추고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족장시대의 교회 운동은, 주로 경건한 신앙의 가정을 통해 보존되었습니다.
홍수시대에는 노아가 그 시대 교회를 대표했습니다. 노아 이 후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했던 교회는 범람하는 인류역사의 죄악에 묻혀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가족을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해 내셔서 새로운 교회운동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가정교회 운동은 모세 시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모세 때에 이르러서는 가정교회가 국가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국가라는 구체적인 조직 안에 중앙 성소를 두고 교회운동은 계속 전개되어 왔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 교회 운동은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서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사람들 모두에게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교회, 우주적인 교회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경적 사실들을 고찰해 볼 때,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는 전적으로 교회를 통해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주의에서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결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중심이 아닌 여하한 운동도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떨어진 운동은 몸에서 떨어진 지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에 서 떨어진 손이나 발이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손발은 언제나 몸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신앙의 운동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로 교회 밖 선교단체들을 사용하신 일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서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과도기적인 현상이며 이런 일을 통해서 교회가 깨어날 때는 언제나 다시 교회를 중심으로 인류구원역사를 이루어오셨습니다.
맺는 말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세 가지 원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 중심 사상입니다. 둘째, 성경 중심 사상입니다. 셋째, 교회 중심 사상입니다.
이 신앙원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잊지 말고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할 원리입니다.
우리가 이 신앙 위에 견고히 설 때 우리의 신앙은 점점 상승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잃어버리면 점점 세상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로부터 이 보석 같이 귀한 신앙의 원리들을 전해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전통의 노예가 되거나 이 좋은 전통을 예찬하는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이 신앙을 보다 나은 방식으로 현재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원리가 나의 신앙고백 속에 녹아져 있게 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십자가 은총과 믿음의 확신 속에 이 원리를 녹여서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신앙의 열정 속에 이 원리를 녹여서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어가는 겸손함 속에 이 원리를 녹여서 고백했습니다.
루터는 그릇된 신앙을 개혁하는 불굴의 투지에 이 원리를 녹여서 고백했습니다.
칼빈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믿음에 이 원리를 녹여서 고백했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은 순교자적인 삶에 이 원리를 녹여서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님 중심, 성경말씀중심, 교회 중심의 원리를 녹여서 고백할 것입니까? 그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저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설교에 이 원리들을 녹여서 설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이 원리들을 녹여서 신앙고백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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